칼럼

재난과 속 기괴한 공포, 그 환상성이 만들어내는 정복의 힘 <조의영역>

한국만화영상진흥원 | 2020-10-28 14:00

재난 속 기괴와 공포,
그 환상성이 
만들어내는
정복의 힘

<조의 영역>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백석문화대학교 

백은지


일찍이 토도로프는 환상성을 정의하는 데 있어 현실적(자연적)인 것과 상상적인(초자연적인) 것과의 관계를 규정하고, 독자의 망설임과 인식 태도에 따라 기이(the uncanny, 번역에 따라 ‘기괴 ’나‘ 괴기’로 해석됨)와 경이(the marvelous), 환상(the fantastic)으로 구분하였다. 조석의 〈조의 영역〉은 한자 조(潮)를 있는 그대로 풀이하면 바다 속 미지의 영역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조석의 성을 딴, 조석이 창조해낸 세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조석은 〈조의 영역〉을 통해 기이와 기괴, 기괴와 경이 사이에서 자신만의 환상 영역을 구축해가며, 그 안에 숨겨진 전복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재난 만화인가, 공포만화인가 <조의 영역> 속 기괴와 공포 사이

재난만화로 알려진 <조의 영역>은 재난만화라 명하기에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 아내는 작품이다. 먼저 우리가 재난을 소재로 한 영화나 만화를 접할 때 예상하는  스토리는 간단하다. 이야기 대부분은 자연재해나 인재를 미리 감지한 전문가가 등장해 그 위험을 알리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결국 재앙에 가까운 재난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그 재난으로 부터 목숨을 잃게 된다. 이때 주인공을 중심으로 그룹이 형성되며, 이들은 재난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에서 숨겨져 있던 개인의 욕망과 집단의 이기심이 드러나고, 기존 시스템의 부조리를 고발하거나 무차별한 과학 문명의 발전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영웅 캐릭터인 주인공에 의해 재난은 극복되고 (간혹 주인공의 희생으로 재난이 해결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숭고함을 강화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재난으로 황폐해진 세계를 다시 재건설하며 이야기는 끝맺음하게 된다.

〈조의영역〉은 거대 물고기가 인간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외형은 재난만화와 닮았지만, 그 기괴함과 섬뜩함은 공포만화에 가깝다. 어느 날 갑자기 물고기들이 거대화된 후, 인간은 그들로부터 물을 빼앗긴 채, 점차 물고기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해간다. 사실 따지고 보면 거대 어류가 그리 낯선 존재는 아니다. TV만 틀어도 고래 같은 거대 어류를 쉽게 접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의영역〉에서 보여주는 공포는 우리가 반찬이나 관상용 정도로 여겼던, 다시 말해 피식자로만 여겼던 물고기가 어느 날 갑자기 포식자가 되는 역전관계에서 비롯된다.

토도로프는 《환상문학 서설》에서 환상성의 본질을 초자연적인 사건과 직면했을 때의 ‘독자의 망설임’에 있는데, 작품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요소를 합리적인 설명으로 마무리하면 ‘기이(괴기)’장르가 되고, 초자연적 법칙을 인정해야한다는 결론에 이르면 ‘경이’가 된다고 보았다. 환상은 하나의 장르라기보다 이경이와 기이(괴기)의 두 장르의 경계 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조의 영역〉에서는 물고기의 거대화 원인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환경오염 정도로 묘사하는데, 이 모호함이 기이(괴기)와 경이 사이에〈조의영역〉을 위치하게 한다. 또한 인간과 어류 사이의 먹이사슬이 역전된다는 설정은 깊은 바다 속 거대 어류가 언제든 인간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다시 말해 어느정도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경이’ 보다는 ‘기이’, 즉 기괴함과 공포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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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 영역〉©조석, 
거대 물고기, 인어, 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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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의 영역〉©조석, 
식욕을 보여주는 장면


이 기괴함은 물고기가 인간화되고, 인간이 물고기화되면서 더 극대화된다. 사람을 잡아먹은 물고기들은 점차 사람의 형상을 닮아가는데, 사람 같은 얼굴과 이가 생기고, 땅 위를 걸을 수 있게 지느러미가 진화한다. 반대로 거대 물고기를 먹거나 물고기에게 물린 사람들은 치매증상을 일으키다가 물고기처럼 기괴한 형태로 몸이 변이되어 사람을 잡아먹는다. 만화에서는 이들을 ‘인어’라고 부르는데, 다리가 물고기처럼 퇴화한 인어는 제대로 걷지 못하고, 혼자서는 힘이 약해 군집으로 인간을 공격해 잡아먹는다. 인어 중에서 몇몇은 머리가 큰 거인으로 탈피하는데, 이들은 ‘개구리’라고 부른다. 이 개구리는 인어와 달리 걷고 뛸 수 있으며,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어, 혼자서도 인간을 잡아먹을 수 있다.

이들 거대 물고기와 인어, 개구리를 지배하는 것은 ‘식욕’ 이다. 이들의 끝없는 식욕은 본인이 다른 물고기에게 먹혀가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먹잇감을 탐닉하게한다. 이‘식욕’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먹는 것이 당연하다는, 그래서 거대 물고기가 인간을 ‘섭취’해도 된다는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처럼 먹이사슬의 역전을 통해 재확인되는 약육강식의 세계는 인간이 먹이사슬의 최상위층이 아님을,언제든 피식자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줌으로써 공포를 만들어낸다.


한편, 〈조의 영역〉이 흥미로운 것은 만화가 전개될수록 그 기괴함과 공포의 주체가 거대 물고기에서 인간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시즌2 주인공인 문소원은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으로 부모님 사망 후, 옆집 아줌마(일명 초록머리 아줌마)가 물고기를 먹고 치매 증상을 일으켜 자신을 군대 간 아들로 착각하자,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몸을 의탁하게 된다. 하지만 정신이 돌아온 초록머리 아줌마는 문소원을 강간범으로 오인해, 그를 감금해놓고 끔찍하게 괴롭히는 살인귀로 변모한다. 살인귀로 변모한 초록머리 아줌마의 모습은 거대 물고기가 사람을 잡아먹는 것보다 더 기괴하고 무섭게 묘사된다. 초록머리 아줌마에서 겨우 탈출한 문소원은 경비원 아저씨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선하디 선하던 경비원 아저씨가 갑자기 인어로 변하여 문소원을 공격하는 모습 또한 매우 기괴하고 그로 테스크하다.

시즌2 초반이 물고기를 먹고 치매 증상을 일으킨 사람들의 기괴함과 폭력성에서 공포를 만들어낸다면, 중후반으로 갈수록 멀쩡한 인간들의 잔인성이 그 기괴함을 압도한다. 문소원이 살고 있는 영종도 아파트 부녀회장은 부녀회장 아내를 죽인 남편이 변장한 모습이다. 그는 평소 가정폭력을 일삼다가 아내를 죽이고 마는데, 이를 감추기 위해 아내 분장을 하고 인어화된 아들을 위해 사람들을유인해서 먹이로 던져준다. 이후에 아들이 개구리로 탈피하다 죽자, 살인귀이자전사로 변하여 닥치는 대로 인간과 물고기를 잡아 죽인다.

이후에 전사로 변모한 그의 모습이 더 인간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아들을 위해 아내 분장을 하고 사람을 유인하는 부녀회장의 모습은 삐뚤어진 부성애의 단면을 보여주며 기괴함과 공포를 자아낸다. 이뿐인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새댁 누나는 평소 가정폭력을 일삼던 남편을, 사람들이 치매 증세를 보이는 틈을 타 토막 살인해 버릴 정도의 사이코패스이다. 이후, 살아남는다는 명분으로 배신을 반복하며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주인공 그룹을 괴롭히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 외에도 재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민낯이 또 다른 공포를 만들어낸다. 거대 물고기를 이용해 부를 축적한 ‘참다란’이라는 대기업이 등장하고, 이들을 이용하려고 인간을 실험체로 쓰는 성형외과 의사가 존재한다. 시즌2 중후반에 등장하는 참다란 소속 연구원은 인어화된 참다란 회장을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수백명의 살아 있는 인간과  인어, 돌고래를 대상으로 잔인한 생체실험을 반복한다. 그녀는 인어화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다는 명분으로, 첫 번째 실험 성공자인 문소원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간의 집단 이기주의를 보여주는 캐릭터라 할 것이다. 이처럼 〈조의 영역〉은 물고기의 거대화보다 인간의 비인간화가 더 잔인하고 기괴하게 묘사되며, 이를 통해 독특한 공포 환상 영역을 구축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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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 영역〉©조석, 
초록머리 아줌마와 경비원, 
부녀회장, 새댁누나


흔한 음모론 속에 감춰진 〈조의 영역〉 속 전복의 힘

재난만화에서는 영웅 캐릭터가 재난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지만, 〈조의 영역〉에서는 주류에서 쫓겨난 아이들이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시즌2에서 주인공 그룹을 형성하는 집단은 대부분 평범하거나 사연이 있는 청소년들이다. 이들은 각자의 사연으로 서로 배신도 하고 반목하다가도, 인간성을 지키며 다시 결속하며성장해 나간다. 시즌2 초반, 두다리가 없어 희생양으로만 묘사되던 문소원은 그가 보조 기구를 장착하면서 (문소원은 장애인 올림픽 대회 육상대회 우승자였다)생태계 최약체에서 영웅으로 거듭난다. 문소원은 친구들을 구하려다 심한상처를 입고 죽을 위기에 처하는데, 참다란 연구원의 수술로 다시 ‘부활’하게 된다. 돌고래 내장 이식으로 부활한 문소원은 인어와 인간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이내 인간의 길을 선택하며 구원자의 길을 걷게 된다.

한편, 문소원은 인어를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는 비밀을 간직한 채 구원의 땅인 서울로 향하지만, 어렵게 도착한 서울은 약속의 땅이 아닌 거짓의 땅이었다(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결말은 설명하지 않도록 한다). 사실 다소 흔한 이 음모론적 반전은 극 중반부터 많은 독자가 예상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공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고까지 했던 문소원이 안전한 서울을 탈출해, 다시금 거대 물고기와 인어, 개구리가 도사리고 있는 땅(시멘트 공장)으로돌아간다는 점이다. 문소원은 그곳에서 죽은 줄 알았던 친구들과 재회해 새로운 터(영역)를 일구어간다.

이 과정에서 살육만을 일삼던 인어들에게도 변화가 생겼음을, 그 진화가 살아남은 인간과 공생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음을 넌지시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은 공동체가 ‘아이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기성세대가 거짓으로 구축한 시스템(서울)을 부정하고, 스스로 진화하기를 결심한 신인류를 상징한다. 동시에 이들이 언젠가 서울의 높은 장벽 넘어, 거짓된 세계를 전복할 힘을 지녔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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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 영역〉
©조석


환상성에 내재된 전복의 힘은 로즈마리 잭슨이 토도로프의 환상성을 비판하면서 제시한 주장이기도 하다. 로즈마리 잭슨은 환상성은 현실 세계와 현실적 원칙과 어떤 방식으로든 관련을 맺어야 하며, 낯설고 이질적인 것과의 충돌로 인해 발생한 기이함과 모순을 안고 있지만, 그 안에 현실의 모순을 비판하며 타개해 나갈 수 있는 전복적 힘을 지녔다고 주장했다. 〈조의 영역〉이 보여준 결말은 조금은 진부한 반전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세대가 지닌 전복의 힘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는 〈행성인간〉과 세계관이 겹치고 오버랩되면서, 단순한 반전용 음모론이 아닌, 신인류가 지닌 전복의 힘과 위험성을 제기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재난에 봉착한 2020년 지금, 우리는 보이  않는 적과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지진, 화산 폭발, 폭풍 같은 재난과 달리, 이 재난은 형태 없이 조용히 스며든다는 점에서 더 공포스럽다. 기괴한 형상이라도 하고 있다면 도망이라도 갈 텐데, 도망가는 방법이라곤 도망가지 않는 것(집 안에 있는 것)밖에 없다. 조석의 〈조의영역〉이 재난만화와 공포만화의 경계에서 있는 것은 지금 우리가 맞서고 있는 형태 없는 재난과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 19는 인간이 바이러스를 정복했다는 자만심을 전복한다는 점에서 〈조의 영역〉과 닮았다. 또한 감추어져 있던 인간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내며, 위장된 가식과 위선을 들추어내고 있다는 점 또한 그러하다. 재난 앞에 선 인간의 민낯 말이다.


츠베탕 토도로프| 《환상문학 서설》, 일월서각
백종성|〈재난만화 장르의 표현기법 및 서사구조 특성 연구 
            〈야후〉와 《드래곤 헤드》를 중심으로-〉, 상명대학교
백혜영|〈『빌러비드』에 나타난 환상성 연구 : 지배담론의 해체와 전복〉, 부산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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