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20년, 거듭되는 재난이 전하는 메시지 〈야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 2020-11-11 14:00

2020년,
거듭되는 재난이 전하는 메시지

<야후>


만화평론가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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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윤태호


2012년에 발표된 〈미생〉 혹은 그에 앞서 선보였던 〈이끼〉를 통해 이제는 많은 이들에게 웹툰작가로 익숙하지만, 만화 독자들에게 ‘윤태호’는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친숙한 이름이었다. 〈연씨별곡〉, 〈혼자 사는 남편〉 등의 성인만화를 통해 풍자와 해학을 선보였던 그는 특히 〈야후〉를 통해 만화잡시 시대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1999년 1월에 창간된 만화잡지 《부킹》에 창간호부터 선보였던 〈야후〉는 2003년까지 연재 햇수로만 5년에 이르렀고, 단행본도 스무 권에 달하는 그야말로 대하 드라마였다. 1999년에는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하면서 인기만큼 작품성도 입증받았다. 〈야후〉가 완결되던 그해 강풀의 〈순정만화〉가 등장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잡지만화 시대의 대미를 장식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작가 개인에게는 물론 만화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야후〉는, 그러한 의미만큼 여전히 만화 독자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장면들이 작품 속에서 주요한 배경으로 살아나 많은 이들에게 각인됐다. 그처럼 ‘인상적인 작품’이라는 견해 속에 작동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꼽자면 건물 붕괴, 수경대, 아버지, 권력 등과 같은 단어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키워드를 다시 재배열하면, 부패한 권력으로부터 비롯된 비극이 그것을 경험한 개인에게 어떤 분노로 파급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야후〉라 하겠다.


첫 번째 재난의 현장, 아버지의 죽음

작품의 출발점은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 보아도 파격적이다. 건물이 붕괴되었고, 붕괴된 건물 속에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아들은 자신의 배를 관통한 철골로 인해 움직일 수 없고, 아버지는 벽 사이에 끼여 꼼짝할 수 없다. 그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입을 움직여 서로의 안부를 묻을 뿐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건넬 수 있었던 것도 잠시, 기울어진 벽 사이에 끼여 있던 아버지는 추가 붕괴 속에 결국 압사당하고 만다. 그렇게 아버지의 죽음을, 벽 사이에 끼여 머리가 터지고 눈이 튀어나오는 장면을 자신의 두 눈으로 담아내야 했던 아들은 사력을 다해 철골에서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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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윤태호


작품은 이처럼 주인공 김현이 불가항력적인 재난 앞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바라보아야만 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그였지만 앞으로 살아야 할 뚜렷한 이유와 목적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즉, 아버지라는 존재는 작품 초반부에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살아남은 아들로 하여금 작품이 끝날 때까지 사회 속에 스며들지 못한 이방인으로 지내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죽음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 죽음이 바로 ‘억울한 죽음’이라는 점에 있다. 만일 아버지의 죽음이 그저 극복할 수 없는 질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면 김현의 방황이 그토록 길고 처절했을까.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작품 속 건물 붕괴에 담겨진 재난의 함의는 재난 그 자체에 있기보다는 거기서 살아남은 개인의 일상에서 재난의 경험이 어떤 작용을 하게 되느냐에 초점이 맞춰진다. 가령, 김현은 애초에 아버지와의 관계가 평탄치 않았다. 일례로 아버지 지갑에서 훔친 돈을 일부러 아버지 앞에서 꺼내 보이며 비아냥거리는 모습을 통해 질풍노도의 시기를 건너는 통상의 10대 청소년들이 지니는 반항의 ‘선’을 넘었음을 보여준다. 그만큼 물과 기름이었던 부자지간이었건만 다행히 현의 여자 친구인 혜원을 매개로 하여 개선의 여지가 생긴다. 재난은 그 즈음 두 사람 앞에 맞닥뜨려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들 부자 앞에 등장한 건물 붕괴는 이제 막 공존과 화합으로 향할 수 있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서 아버지를 죽게 만듦으로써-특히 아들이 보는 앞에서 아들이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상황 아래 죽음을 맞이하게 만듦으로써- 아들에게는 천추의 한으로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작품 전체로 볼 때 건물 붕괴는 아주 초반에 등장하는 일부 사건이지만, 이후 주인공의 인생 경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사건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동일한 의미로 다가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아주 심각한 재난을 만나게 되었을 때 비록 자신은 그 위험에서 벗어나더라도 곁에 있던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한다면, 자책과 무기력함으로 인해 남은 생은 결코 온전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김현이 자신이 있을 곳으로 선택한 공간은 ‘사지(死地)를 들락날락해 본 냄새’를 가진 이들이 모인 곳, 수도경비특수기동대(이하 수경대)라는 조직이다. 거친 삶을 살았던 이들이 가득한 그곳에서 이제 막 스무 살 청년 김현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 채 견디고 버티는 삶을 선택한다.


두 번째 재난, 어느 소녀의 죽음

〈야후〉는 198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시작됐다. 김포공항 폭발물 테러 사건, 86 아시안게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5공화국에서 6공화국으로의 정권 교체 등 등 실재했던 사건들이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이와 같은 현실들이 날실이라면, 대통령 직속 수경대라는 허구는 씨실이 되어 한 편의 드라마를 완성 시킨다. 작품 속에서 수경대는 88올림픽을 앞두고 어지러운 국내 정세를 무마하기 위한 권력층의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요컨대 허구로 탄생된 김현이라는 인물을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 속에 배치시킴으로써 하나의 개인이 국가와 사회 나아가 역사로부터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그려낸다. 그리고 날실과 씨실의 중요한 교차점에서 1995년 6월에 일어났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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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윤태호


수도경비 외에도 대민지원을 주요 임무로 맡고 있던 수경대는 백화점 붕괴현장으로 투입된다. 김현 역시 현장에 투입되어 건물 잔해를 헤치고 생존자를 구출하던 중 거대한 벽 사이에 끼여 있는 한 소녀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소녀의 모습에서 10년 전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고, 아버지의 죽음과 동일하게 소녀가 압사하는 모습까지 목격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과정에서 작품은 부패와 부정이 일으킨 결과가 결국 개개인에게 얼마나 큰 결과로 파급되는지 김현의 시선을 통해 독자에게 도달시킨다.

동일한 형태의 죽음이지만 두 번째 목격한 참사에서 김현이 느낀 감정은 첫 번째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리고 그 달라진 형태의 감정에 대하여, 김현을 추적하는 신문기자의 입을 통해 명확히 묘사해 보인다. 즉, ‘아버지가 죽을 당시, 김현은 공포에 질려 현장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소녀가 죽을 당시엔 짐작컨대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한 듯한 당당한 분노가 느껴진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김현은 스스로에 대해 자책감이 컸기 때문에 죽음의 원인 혹은 재난의 잘잘못에 대해 따질 겨를조차 없었다. 그리하여 재난의 실체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고, 그런 이유로 분노할 대상을 알지 못한 채 감정을 억누르며 버텨왔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과 동일하게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소녀의 모습 앞에서, 자신의 감정이 아버지의 대한 미안함 혹은 손을 쓸 수 없었던 무기력함이 아니라, 이러한 사태를 만든 자들에 대한 분노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분노는 다시 지금까지 자신이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었는가에 대한 문제로 연결된다. 즉, 수경대의 존립 이유가 부조리한 권력의 유지를 위한 것이며, 그것은 깨닫는 순간 그는 더 이상 그 조직에 남아 있을 수 없다. 이제 그에게 남은 선택은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재난은 ‘태풍, 홍수, 폭풍, 가뭄, 지진 등과 같은 자연현상’에서 기인된 결과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그러한 자연적인 재해에 비길 법한 다양한 형태의 재난이등장하고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코로나19 사태’를 그 대표적 사례로 얘기할 수 있다. 이른바 ‘전 지구적 재난’ 앞에 유래 없는 통제와 봉쇄를 경험했고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야후〉는 현재에도 유효한 화두를 던진다. 재난은 언젠가 복구되고 다시 평온한 일상을 맞이할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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