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만화에서 섹슈얼리티 묘사의 통사적 맥락과 동시대적 고민
한국 만화에서 섹슈얼리티 묘사의 통사적 맥락과 동시대적 고민
반복된 관습처럼 기호화한 섹슈얼리티를 담은 작품들에 새로운 독자들이 질문하기 시작했다.
“왜?”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당대의 섹슈얼리티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베껴온 클리셰인가? 아니면 주류를 전복하는 힘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글 박인하
‘지금(여기), 만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지금까지 만화’를 살펴보는 건 좋은 통찰을 얻게 한다. 2015년 9월 21일 시작된 <뷰티풀군바리>(글 설이, 그림 윤성원)에 대한 연재 중단 청원에서는 이작품의 연재가 중단되어야 할 이유로 ‘맥락 없이 성적 연상을 유도해 여성을 대상화하는 시각을 강화하는 행위’를 꼽았다. 연재 중단 청원뿐만 아니라 청원 전후로 지면에서 <뷰티풀 군바리>에 대한 비판이 있기도 했다. 특정 만화를 둘러싼 논의로는 가장
격렬한 방식이 아니었을까 한다. 문제의 지점을 요약해 보면, 여성이 군대에 간다는 설정, 군 생활에서 벌어지는 폭력, 여성 캐릭터를 성적으로 묘사하는 스타일로 나눌 수 있다. 문제의 지점에 대해 일부는 불편하게 받아들였고, 일부는 그게 뭐가 문제냐라고 생각했다. 2015년 논쟁 이후 <뷰티풀 군바리>는 여전히 연재 중이고, 요일 인기 순위에서도 최상위권에 위치한다. 한 작품을 보고 형성된, 완전히 상반된 반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미소지니(misogyny) 문제라고 끝내버리면 다양한 스펙트럼이 사라지고 OX 문제가 되어버린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기 위해 ‘지금까지 만화’를 살펴보는 통사적 맥락의 접근을 시도해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만화에서 섹슈얼리티 묘사의 통사적 맥락과 동시대적 고민이라는 화두는 이후 추가되는 후속 연 구를 통해 풍성해질 것이다. 일본 만화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정리할 때 참조한 <에로망가 스터디-쾌락 장치로서의 만화 입문>, <에로 망가 표현사>가 저작권 계약 후 출간될 예정이니 책이 나오면 좀 더 풍부한 논의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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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만화에서 ‘섹슈얼리티’를 박해천이 한국 중산층을 명명한 작명을 빌려 말하면 ‘아수라장의 모더니티’ 다. 만화에서 드러나는 섹슈얼리티는 욕망의 반영인데, 실체가 불분명하다. 욕망의 출처가 모호하다. 한국 만화에서 섹슈얼리티는 일본 만화를 대상으로 한 금지와 전유(appropriation)를 통해 뒤섞인 혼종의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섹슈얼리티는 주로 ‘외설’로 불렸는데, 외설은 사회를 파괴하는 범죄로 다뤄졌다. 특히 군사독재 시절 섹슈얼리티에 대한 억압은 문화 전반 검열 기조의 하나로 유지되었다. 예를 들어 1969년 7월 3일 서울지검은 음란성 범죄 특별 단속반을 구성해 15일간에 걸친 외설물 단속에 나선다. 영화, 논픽션, 소설, 월간지 등을 단속했다. 7월 15일에는 영화 <내시>의 신상옥, <벽 속의 여자>의 박종호 감독이 입건된다. 정사 장면을 묘사했다는 이유였다. 섹슈얼리티 묘사를 허용하면 군사독재의 권위적인 지배 구조에 균열이 갈 것으로 생각했다. 혹 그런 고차원적 사고가 아니더라도 사회는 통제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했으니 당연히 섹슈얼리티에 대한 억압을 체제 유지 차원에서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 정신은 달랐다. 1960년대 세계사적 조류에서 섹슈얼리티는 카운터 컬처의 하나로 강력하게 분출되었다. 유럽에서 벌어진 68혁명, 미국에서 벌어진 히피 운동, 일본의 전공투 운동까지 1960년대는 사회적, 계급적 저항이 주로 청년층을 중심으로 문화적으로 폭발했던 시기였다. “유럽 젊은이들의 부패한 정권에 대한 저항과 사회 변혁의 의지는 다양한 예술 장르, 특히 영화에 크게 각인되어 유럽과 미국, 일본의 감독들은 성적 일탈과 저항을 정치적 혁명과 동일시하는 작품들을 다수 연출했다”, ‘미풍양속’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섹슈얼리티가 전복의 메커니 즘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문화에서는 섹슈얼리티를 억압하고, 현실에서는 ‘기생관광’과 같은 형태를 장려한 혼란의 시대에 만화에서 섹슈얼리티는 일본 만화를 전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일본문화를 ‘교류’나 ‘수입’의 형태가 아니라 원본을 감추 고 전유했다. 만화의 경우 수많은 작품 중에서 한국화시키기에 적당한 작품을 골라 다시 그렸다. <타이거마스크(タイガーマス ク)>(1968) 가 <타이거마스크>(1970)가 될 때 교통사고로 주인공이 죽는 엔딩은 군입대 엔딩으로 ‘애국적 전복’과정을 거친다. <내일의 죠(あしたのジョー)>(1968)가 <도전자 허리케인> (1973)이 될 때, 주인공의 국적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상대방 복서의 국적은 한국인에서 태국인으로 뒤바뀐다. 수많은 일본 만화 중에서 한국에 전유된 작품들을 보면, 주로 로봇, SF, 스포츠 같은 장르물에 집중된다. 특히 자국의 문화적 특성이 강한 개그물이나 진지한 고민을 담은 작품들은 배제되었다.
군사독재 정부는 거의 모든 문화 영역에서 섹슈얼리티를 극도로 억압했다. 하지만 서구에서 불어온 변화는 숨길 수 없었다. 우리 는 철의 장막, 죽의 장막을 친 공산권이 아니라 엄연히 자유주의 서방권 블록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1960년대 말 한국이 지향했던 서구로부터 도착한 성 해방의 조류는 문화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박유희의 지적처럼 ‘풍부한 논란과 토론이 필요한 상황’ 이었다. 영화는 섹슈얼리티 묘사에 대한 ‘자율적인 논의가 금지 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혹은 그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예술을 위해서 벗긴다는 한국 에로티시즘 영화의 논리 구조’ 를 만들었다. 만화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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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만화에서 섹슈얼리티 묘사는 <선데이서울>로 대표되는 주간 잡지에 처음 등장한다. 1964년 한국일보사는 <주간한국>을 창간한다. <주간한국>은 40만 부를 돌파, 1968년 본지 <한국 일보>의 발행 부수를 넘을 정도로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1968년 언론사의 주간지 창간 붐이 불며 <주간중앙>, <선데이서 울>, <주간경향>, <주간여성> 등이 창간된다. 주간 잡지는 처음 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대중오락 잡지를 표방한 주간지는 곧장 음란, 외설 논란에 시달렸다. 대학생들은 주간지를 불태우면 서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주간지에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만화가 연재되었고, 매체의 성격에 맞춰 자연스럽게 만화에도 섹슈얼리티를 묘사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1974 년 <선데이서울>에 연재를 시작한 박수동의 <고인돌>, 그리고 같은 해 <주간여성>에 연재를 시작한 강철수의 <사랑의 낙서> 가 있다. <고인돌>은 당시 명랑만화라 불렸던 약화체 스타일의 작품이었고, <사랑의 낙서>는 극화체 스타일이었다.
<고인돌>이 남녀의 에로틱한 상황을 2페이지에 은유적으로 풀어냈다면, <사랑의 낙서>는 청춘 남녀의 연애 에피소드를 담았다. 당시 주간 잡지가 음란, 외설 논란에 시달릴 정도로 섹슈얼리티 묘사에 적극적이었지만, 만화는 기사나 화보, 소설 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은유적인 묘사를 했다. 1972년 <일간스포츠>에 <임꺽정>(고우영)이 연재되며 성인만 화에 대한 어른들의 욕망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후속작 <수 호지>의 인기는 전작을 뛰어넘었고, 연재분은 1973년 50쪽 분 량에 4×6배판 사이즈, 정가 60원의 가판용 만화로 제작, 판매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이어 1974년 강철수의 <사랑의 낙서>가 가판용 만화에 합세, 1974년 상반기에 모두 10여 종이 나왔다. 고우영 <수호지>는 무려 50만 부가 판매되었다.
어른들의 만화라는 새로운 화두는 당대의 만화가, 출판업자들을 자극했다. 60년대말 에로영화 유행이나 주간 잡지의 성공을 보면 만화의 성공 공식도 단순했다. 1974년 박부길은 부길 프로덕션을 설립해 <김일성의 침실>을 출간했다. 미풍양속을 지키는 것보다 앞선 가치는 반공이었다. 만화는 김일성의 젊은 시절부터 시작해서 주로 폭력과 성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끌고 갔다. 절망이나 퇴폐가 용공이 되던 시기에 반공을 위한 섹슈얼리티는 역설적으로 승인되었다. 1960년대 일본 만화를 전문적으로 베껴 그리던 향수 만화 팀은 1974년 향수 프로덕션에서 <여간첩 마타하리>를 출간한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프랑스에서 스파이로 활동했던 마타하리 앞에 ‘여간첩’이라는 다분히 반공 적인 수식어를 붙였다. 폭력도 반공의 옷을 입고 정당화되었다. 1974년 <의리, 정의, 항일, 반공의 기수 김두한>(김창호), <113 수사본부 야간열차>(김광섭 글, 한진 그림) 등의 작품이 출간되었다. 1977년 1월 성인만화에 퇴폐적인 내용이 실려있다는 이유 로 일제 단속 실행 후 성인만화 윤리 실천요강이 폐기되고, 성인 만화 심의제가 폐지되었다. 아예 성인만화를 심의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즉, 이때부터 만화는 오로지 아동, 청소년용으로만 출간되어야 했다. 그렇게 1974년에서 77년까지 3년 동안 짧은 가판용 성인만화 시대가 존재했다.
흥미로운 건 가판용 성인만화를 설명하는 수식어가 모두 ‘극화(劇 畵)’라는 점이다. <수호지>는 제목 앞에 ‘극화’, <김일성의 침실> 은 ‘반공 실록극화’, <의리, 정의, 항일, 반공의 기수 김두한>은 ‘실록 극화’, <맹룡의 철권>(김창호)는 ‘성인 극화’라는 수식어가 붙었 다. ‘극화’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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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가쿠칸의 사전에서는 극화에 대해 ‘만화의 형식 중 하나. 스토리를 지닌 만화 중 선이 동적이고, 화면의 원근을 잡는 방법과 배경을 그리는 방법 등이 사실적인 것. 줄거리의 재미와 현실성 에 주안을 둔다’고 설명한다. 1957년 타츠미 요시히로(辰巳ヨシ ヒロ)가 처음으로 사용한 극화는 밝고, 희망적인 데즈카 오사무 (手塚治虫) 중심의 주류 만화와 달리 어둡고 절망적인 이야기 를 담아낸 만화들을 포괄한다. 오사카에 근거를 둔 대본 만화 출 판사 히노마루 문고에서 활동하던 타츠미 요시히로를 중심으로 이시가와 후미야즈(石川フミヤス), K 모토미츠(K・元美津), 사쿠라이 쇼이치(桜井昌一), 야마모리 스스무(山森ススム), 이토 마사하키(佐藤まさあき), 사이토 타카오(さいとう・たかを), 마 츠모토 마사히코(松本正彦) 등이 단편 앤솔로지 <도시의 무지 개(都会の虹)>, <그림자북(影)>(1956) 등에서 활동했다. 1957 년 타츠미 요시히로, 마츠모토 마사히코, 사이토 타카오는 도쿄 의 센트럴문고에서 단편 앤솔로지 <거리(街)> 시리즈를 출간하며, 극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1959년에는 극화 정신에 호응하는 작가들과 ‘극화공방’을 결성하며, 좀 더 대안 운동적인 의미를 얻게 된다.
극화의 물결은 1959년 12월 시라토 산페이(白土三平)의 <닌자 분게이쵸(忍者武芸帳)>(세이린도)을 낳았다. 1962년 10월까 지 총 17권 분량의 대본 만화로 출간된 <닌자분게이쵸>는 극화 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계기가 된 작품이다. 농민 봉기와 계급 사상을 테마로 하였기 때문에, 안보 개정 문제로 시끄럽던 시절의 고등학생, 대학생 사이에 유명해져, ‘극화’라는 표현 장르가 오사카에 그치지 않고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
1960년 미일안보조약 개정을 반대하는 전국적인 안보 투쟁이 시작되는 등 1960년대 일본은 노동운동, 학생운동이 정점에 달하던 시대였다. <닌자분게이쵸>가 발화시킨 극화 붐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건 세이린도(青林堂)에서 1964년 7월 24일 창간한 만화잡지 <월간만화 가로(月刊漫画 ガロ, 이후 가로)>다. 4호부터 시라토 산페이의 신작 <카무이덴( カムイ伝)>을 연재하며 1966년에는 8만 부를 발행하기에 이른다(창간호의 10배 까지 발행 부수가 늘었다). <가로>에는 대본 만화 출신의 어둡고 격렬한 이야기를 하는 작가,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을 보여준 젊은 작가 등이 모여들었다. 요괴 만화와 태평양 전쟁 경험담을 담은 만화 등을 발표한 미즈 키 시게루(水木しげる), <나사식(れじ式)>(1968)의 츠게 요시 하루(つげ義春), <적색 에레지(赤色エレヅ-)>(1970)의 하야시 세이이치(林静一), <만화가 잔혹 이야기(漫画家残酷物語)>의 나가시마 신지(永島慎二), 사만화(私漫画)로 유명한 아베 신 이치(安部慎一), 초현실주의 만화를 그린 사사키 마키(佐々木 マキ), 록밴드 출신으로 실험적인 작품을 발표한 오쿠헤이라(奥 平イラ) 등이 <가로>에서 활동했다.
극화는 데즈카 오사무가 추구한 기호적 표현, 어린이들에게 유익한 스토리 대신 사실적 표현, 격렬한 연출, 세상의 어두움을 드러내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실질적으로 ‘극화’라는 대안적 용어
를 선택한 이들은 반(反) 데즈카, 비(非) 데즈카 만화의 집합이었다. 성장하는 독자들이 자신의 만화에서 극화로 떠나자 데즈카
오사무도 새로운 만화(청년만화)를 발표하고, 이를 위한 전문잡지를 직접 출판한다. 1966년 12월 ‘만화 엘리트를 위한 만화 전문지’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무가지 <지금, 만화>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제공하는 계간만화, 웹툰비평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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